1963년 9월 2일 보물 제39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1월 2일 국보 제320호로 승격되었다. 1447년에 왕명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지어올리자 세종이 석가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이다. 그러나 왕의 측근이었던 김수온(金守溫)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것이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월인천강지곡》이란, 부처가 나서 교화한 자취를 칭송한 노래라는 뜻으로, 상·중·하 3권에 500여 수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아울러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국 최고(最古)의 가사(歌詞)이다. 이 책의 표기법에 관하여 몇 가지 두드러진 점을 들어보면, ① 당시의 맞춤법은 모두 표음(表音)의 원칙, 즉 소리나는 대로 적는 원칙에 따랐다. 곧, ‘사월인천강지곡 본문 이미지 1미월인천강지곡 본문 이미지 2,바월인천강지곡 본문 이미지 3(食), 머그니(食), 마가(防)…’ 식으로 풀이씨(用言)와 줄기(語幹)와 씨끝(語尾)과의 구분이 지켜지지 않고 표기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일이시나, 눈에, 말이시나, 일흠은, 담아, 안아, 안월인천강지곡 본문 이미지 4시니이다, 낮과, 곶우흰, 곶비, 맞나월인천강지곡 본문 이미지 5며, 깊거다… ’ 등으로 비교적 현대 문법과 가깝다. ② 다른 문헌이 한자(漢字)를 앞세우고 그 밑에 한글로 음을 다는 표기법을 채택하고 있음에 비하여, 이 책은 그 위치가 반대로서 한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려는 주체성(主體性)의 발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③ 종성(終聲)이 없는 자리에 ‘ㅇ’을 붙이던 당시의 한자음 표기법을 볼 수 없다는 점 등이다.